- 엄태선 기자
- 승인 2020.10.0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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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영진물산에서 모태...62년 영진약품공업으로 첫발
64년 국내 최초 항균제 설파제 원료 합성-영양수액제 개발
2004년 KT&G에 편입 새출발...연구개발로 신시장 공략중
6.25 전란 속에서 무료로 약을 지어 주어 대중을 구제한다는 뜻의 '시약제중(施藥濟衆)'의 정신으로 1952년 첫발을 내딛은 제약회사가 있다. 전쟁의 혼란에서 의약품을 수입해 질병치료에 나선 영진물산을 모태로한 영진약품이다.
영진물산은 1962년 영진약품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후 본격적으로 국내 의약품 제조를 시작, 제약사의 본모습을 만들어갔다.
혼란기에 출발한 기업인 만큼 저렴한 의약품의 대량 공급의 중요함을 피부로 느끼고 원료합성 연구에 투자, 국내 최초 항균제인 설파제 원료 합성과 비경구 영양수액제 개발에서 성공하면서 국내 임상의학계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수준의 생산시설의 갖추면서 세계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완제의약품 수출을 시작으로 2010년 2천만불 수출을 달성하면서 명실상부한 선진 수출형 기업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상반기 매출의 30% 수준이 수출로 얻어지고 있다.
80년대 들어서 드링크 시장에도 진출해 지금까지 영진하면 떠오르는 '영진구론산바몬드'를 출시, 간판제품으로 자리잡아가면서 90년대초 익산에 드링크 KGMP 시설을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위기를 맞았다. 바로 과투자 등으로 경영위기에 놓이면서 1997년 부도를 맞았다. 이후 갖가지 노력을 통해 법원이 화의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자본유치 등에 성공, 기사회생하게 됐다.
2004년 정부출자기관인 옛 한국담배인삼공사 KT&G로부터 200억원의 자본 유치를 받으면서 해당 계열사로 편입됐다. 주인이 바뀌는 시점이었다. 명맥 단절(?)의 위기에 놓였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런 과정에서 2013년 유명품목인 '영진구론산바몬드' 등 드링크사업을 해태음료로 넘기면서 드링크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아픔을 삭였다.
이는 신약개발 등 연구개발과 함께 해외시장 공략으로 수출시장에서 앞장서는 기업으로 탈바꾸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하 생략...더 많은 기사는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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